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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너머 편 (채사장 지음) : ⭐⭐⭐⭐

by 만결숭이 2021.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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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 [채사장 지음/웨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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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나의 삶을 반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사회가 말하는 진리가 진짜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종교와 국가와 시장과 가족이 나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물론 그것이 정말로 절대적인 진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리가 역사적임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두렵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진리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하는 것이 두렵고, 기존에 내가 진리를 위해 쏟아온 정성과 노력이 허튼짓이었을까봐 두렵고, 지금까지 나와 단일 진리를 공유해왔던 가족과 친구들의 눈치가 두렵다.
어떤 삶을 선택해도 괜찮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진리를 의심하고 그로 인해 주변과 마찰을 빚더라도 다른 진리를 찾아 떠나는 인생도 괜찮은 선택이고, 내가 믿어왔던 진리에 대한 신념을 더 굳건히 해서 이를 주위 사람들과 함께 지켜나가는 인생도 괜찮은 선택이다. 결정은 당신이 하면 된다.
근대를 끝내고 현대 포스트모던의 탄생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질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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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세계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본질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과 현상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 말이다. 철학이라는 분야가 어렵고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부내용만 조금씩 바뀔뿐,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절대적이고 본질적이며 현실에 없는 무언가의 질서를 찾으려는 이상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그런 사람들을 꼴 보기 싫어하고 눈에 보이는 경험적인 것들을 중요시 하는 현실적인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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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데카르트의 사유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모든 세계의 증명을 시작한다.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나의 의심과 회의를 통해서이고, 나의 존재증명이 신과 세계의 증명보다 앞선다. 즉 인간의 이성이 우선이고, 신과 세계는 이로부터 파생되어 증명되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아직도 '신'을 언급함에도 불구하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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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붐 오르가눔> 에서 베이컨은 우선 우상론으로 기존 학문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여기서 우상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을 의미한다.
• • •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오류들을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험이 전체의 일반적인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류를 발생시킨다. 베이컨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동굴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동굴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동안은 외부의 실제 빛이 아니라 동굴의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제한된 빛으로 동굴 안을 본다. 이러한 주관성이 극복될 때 편견 없는 학문 탐구가 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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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세상을 둘로 분리했다. 내 눈앞에 드러난 세계를 '현상'이라고 부르고, 현상 너머의 진짜 세계를 '물자체'라고 불렀다. 칸트에 따르면 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상뿐이고, 사물의 실체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건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이미지로서의 사과일 뿐,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실제 사과는 결코 감각할 수 없다. 여기까지 들으면 우리는 실제의 경험 세계를 포기하고 나의 관념 속에 갇힌 것만 같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각자의 현상 세계에 매몰되어 있는 주관적인 존재인 것이다. 박쥐와 나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 있고, 동시에 나와 다른 사람들도 너무도 다른 자신만의 세계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자폐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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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간의 존재도 생각해보자.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말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신의 피조물'인가?
• • •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본질을 상실하면 인간을 파기할만한 본질은 찾을 수 없다. 말하지 못해도 인간은 가치가 있고,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인간은 가치가있다. 즉 인간은 의자나 돼지처럼 단일한 본질을 갖지 않는다. 이렇게 고정된 본질을 갖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존재자에 대한 이름이 '실존'이다. 인간은 실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문제는 규정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을 억압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집단들이 있다는 것이다. • • • 우리는 '국민'으로, '아들과 딸'로, '피조물'로, '이성적 존재'로, '회사원'으로, '군인'으로 규정되어왔고, 스스로 그것이 자신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의 본질이 아니며, 나는 본질을 가질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본질로 존재하지 않는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에게 뒤집어씌워진 본질을 하나씩 벗어내고 어떠한 규정과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면, 나에게는 단지 세 가지만이 남게 된다.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규정되지 않고 절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실존하는 존재다. 사르트르는 이에 대해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저주는 부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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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가 과학의 아버지인 것은 그가 과학적 관찰과 수학적 근거를 병행해서 제시하는 과학적 방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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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되고 불변하는 실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무아와 연기를 받아들일때, 삶의 고통은 제거되고 개인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이를 부처는 명료하게 고집멸도의 네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고통을 직시'하는 단계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 미워하는 김 부장의 얼굴을 매일 보는 것. 내가 계획한 일들이 어긋나는것, 늙어감에 따라 병들고 아파지는 것 모두를 명료하게 바라보는 단계를 말한다.
두 번째 단계는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는 단계다. 고통이 발생하는 것은 '집착'하기 때문이다. 안정된 현실을 꿈꾸고, 감각의 쾌락을 꿈꾸고, 죽고 나면 좋은 곳에서 태어나고 싶어하는 욕구와 집착이 고통의 원인이었음을 이해하는 단계다.
세 번째 단계는 '집착을 제거'하는 단계다. 모든 집착과 번뇌와 욕망을 멸한다면 고통의 원인이 사라지고, 이에 따라 고통도 사라질 것이며, 우리는 해탈에 이르게 될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수행'을 실천하는 단계다. • • • 해탈에 이르는 네 단계인 고집멸도를 사성제라고 부른다. 사성제와 팔정도는 불교 이론의 핵심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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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없다고 해도 부정할 수 없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은 세계를 보고 있는 나의 의식이다. 내가 세계를 보는 구심점으로서 의식적 존재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매 순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엄밀히 말하면 타인에게도 나처럼 의식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타인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인의 행동을 통한 추측일 뿐, 내가 직접 타인의 의식 세계를 들여다보고 확인한 것은 아니다. 내가 나의 의식을 경험하는 것처럼 명백한 근거가 있는 엄밀한 판단이 아닌 것이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지금 경험하고 있는 나의 의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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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의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석학적 순환이 요구된다. 전체를 아우르는 끝으로서의 죽음에 대해서 앞서 생각하고 이해할 때 지금 현재 삶의 의미가 이해되고, 현재의 부분의 의미가 이해될 때에야 궁극적으로 인생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죽음은 필수적이다. 죽음이 없다면 삶의 의미는 확정되지 않고 이해될 수도 없다. 죽음을 회피하고 모르는 체하려는 현대인들은 그래서 일상이 허전하고 불안하며, 의미의 상실 속으로 던져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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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연구에서의 지위와는 별개로 죽음에 대한 관념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죽음 이후의 삶의 가능성이 지금 나의 삶의 방향과 의미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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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지대넓얕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책. 1권에서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에 대해서 다루는데 모두 현실과 연관된 주제들이다. 물론 나는 1권을 읽지도 않고 바로 이 현실 너머 편을 펼쳤다.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이 다섯 중 무엇 하나 빼기 힘든 나의 엄청난 관심사이다. 글자만 봐도 두근거린다. 두근

나는 평소에도 수만가지의 생각에 잠기곤 한다. 물론 그 생각들은 체계적인 흐름이 아니라 무질서하고 동시다발적이다. 그렇기때문에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하기까지 정리하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이 책은 소설책에 비해 읽는 속도가 느리고 한 문장을 이해해야 그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만큼 문장 하나하나가 굵고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게 왜 나한테 좋았냐면, 내가 생각해본 적 있는 내용이지만 훨씬 탄탄한 근거와 정확한 인과관계가 글로 잘 정리되어 있으니 엄청 반가운 동시에 통째로 머릿 속에 집어넣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키게되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은 5가지 주제를 가지고 지식을 전달하기위한 설명을 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이 지식들을 이용하여 독자들이 삶의 의미를 깊게 찾아보고 방향을 결정하게끔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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